한강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잠시 썼다. 그는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당선되어 소설가로 빛나게 등장한다. 그리고 2013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내고 시인으로 일단 문단에 인사를 올렸다.그 시집 「시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적막이 있었다.” 시인은 일상에 불꽃이 있고 적막이 있다고 요약해 준다. 양자가 주는 팽팽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을 모두 담아두고 싶은 가을, 문득 소풍을 떠나고 싶다. 소풍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저 행복했던 초등학생 시절, 내가 가장 많이 기다린 소풍날의 행사는 ‘보물찾기’였다. 보물찾기가 시작되면, 파도소리 멀리 들려오는 울기등대 공원의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풀숲과 꽃을 살피면서 보물을 찾아 나섰다.보물이라 해봐야 연필 한자루 공책 한권에 불과했지만, 그 작은 보물을 찾은 순간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선명하다. 담임선생님이 몰래 숨겨두신 선물이 어딘가 있을 거라는 굳은
그러려면 학자들의 치열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 예술로의 승화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어도 문양의 해석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다음은 주인공인 유리 여사가 나와 천전리 서석문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나는 또박또박 발음하는 유리여사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양훈 소설가의 번역으로 또 한 번 더 듣는 셈이었다.“나는 일본인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곳으로 따지면 나는 조선인인 셈입니다. 여기 가까운 곳에 백련정이라는 정자가 있었
렛츠런파크 서울이 단풍으로 물든 가을을 맞아 오는 10일 제13회 스포츠월드배 경주를 개최한다. 이번 경주는 국내산 4등급 경주마들이 1,600m 코스를 달리며 순위 상금 6천만 원을 놓고 치열한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이날 렛츠런파크 서울은 가을 나들이객들을 위해 무료 입장을 시행하여 경마를 더욱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올해 스포츠월드배에서는 총 8두의 경주마가 출전하며, 그중 주목할 만한 세 마필이 있다. ‘용비파워’는 지난 10월 1,700m 경주에서 승리하며 긴 침묵을 깨고 화려하게 돌아
“이건 새로운 발견입니다. 학계에 보고를 해야 해요.”“보고까지 할 사안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걸요.”나는 유골이 든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김동휘에게 장소가 어떤가 물었다. 덧붙여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바위벽이 지금 서 있는 곳의 오른쪽 산 끝에 있다는 것을 일러 주었다. 20년 전에 건너편의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곳을 함께 걸었다는 설명도 해주었다.“저곳이 바로 최초의 사막이었습니다. 지금은 버드나무 숲이 되었지만 그때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같은 길이었죠. 상류에서 떠내려 온 모래가 저 위
살아있을 때 이렇게 네 사람이 차를 타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복로타리를 지나 언양으로 가지 않고 부산방면으로 핸들을 돌렸다. K와 처음 만났던 울산대학교로 가기 위해서였다. 신복로타리에서 1킬로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울산대학교 정문이었다. 방학 중이라 학교 안은 한산했다. 정문으로 들어가 본관 앞의 광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도서관 건물을 지나 예전에 사회교육원이 있던 건물까지 갔다가 돌아 나왔다.교문을 빠져 나올 때 룸 밀러로 김동휘를 바라보니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저릿
경주에 사는 김은경 시인을 만나러 가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 같이 가기가 좀 곤란하다고 했다. 물론 김동휘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저녁에 외식이나 하러 나가자고 둘러댔다. 아내는 할 수 없다는 듯 동행을 포기했다.나는 약속장소인 태화강 대밭공원이 내다보이는 파스쿠지 커피숍으로 갔다. 주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커피숍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커피숍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20년 전에 두 번 만났던 사
밀양지역 산림의 소나무를 베어버리고 다른 종류의 나무로 수종 변경을 시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나 피해목이 많으면 아예 숲을 바꾸려고 하나 싶으면서, 소나무가 없는 우리나라의 산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국도로 나가 지나가는 산을 바라보면 점점이 붉은 얼룩이 쉽게 눈에 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병들어 있는 모습이다. 1㎟ 남짓의 크기를 가진 소나무재선충이 저 크고 오래 된 나무들을 병들어 죽게 한다니 안타까운 일이다.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손꼽힌다. 가장 좋아하는
유리 여사는 내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이야기의 전말을 다 듣고 난 유리 여사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우리 아버지는 25년 전에 일본을 떠날 때 시한부 선언을 받은 상태였어요. 내가 직접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에게 확인까지 받았었습니다. 폐암 말기였어요. 그런 분이 아직 살아계신다니 믿기지 않아요.”이번에는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재성 노인의 기록에는 암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증세가 어떠했고 어떻게 치료를 받았었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이야기는 소용이 없는 것이겠습
아니면 당신 친아버지 마츠오를 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유리 여사는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서 있을 뿐 무어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 거렸는데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김인후를 앞으로 불렀다. 김인후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곁으로 왔다.“이 사람이 다케시의 친 조카손주입니다. 지금 104세이신 다케시 노인을 모시고 있죠.”“오오! 하나님.”유리 여사는 오른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이양훈 소설가가 후들후들 떨고 있는 유리 여사를 겨우 붙들고 있었다. 박물관 관장은 유리 여사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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