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창을 타고 집안 깊숙이 스며든다. 먼지의 입자들이 황금빛 실루엣으로 일렁인다. 모처럼 방 안에 한가롭게 앉아 있으니, 가슴 턱 밑까지 차오른 살림살이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삶이란 참 많이도 쌓아두는 일인가 싶다.가끔은 실오라기 하나 없이 정결한 호텔 방처럼 깔끔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이 피어나지만, 삶이란 그렇게 단정히 정리되는 법이 없다. 책장, 서랍, 장식장, 찬장까지 오랜 세월을 통과하며 켜켜이 얹힌 물건들 속엔 그 시절의 나날들이 삶이라는 실로 촘촘히 꿰매져 있다.아이들 성장기를 계절마다 담았던 사진들, 여행지
최근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목의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꼭 보라고 권유해 주었다. 지난 주말 모처럼 여유가 생겨서 몰아보기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큰 딸 금영은 똑똑하고 공부도 매우 잘하여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집안의 큰 자랑이었다. 그러나 금영의 남동생인 은명은 그 반대였다. 은명이 나름대로 성적을 잘 받아와도 뒤이어 귀가한 누나가 엄마에게 성적표를 내밀며 전 과목에서 한 문제가 틀렸다고 속상해한다. 세월이 흘러 은명이 부모에게 섭섭했던 마음을 처절하게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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