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갈 때, 그것도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은 부쩍 상념에 젖는 일이 많다.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은 제대로 된 게 거의 없고, 그저 세월만 보냈다는 자탄이 나오는 것도 이 즈음이다. 더구나 타향을 떠돌며 사는 나그네 신세라면, 올 한 해는 그럭저럭 보냈지만 내년은 어디를 떠돌게 될지 막막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반평생을 방랑자로 산 김시습에게 연말의 저녁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저녁 단상萬壑千峰外 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 밖으로孤雲獨鳥還 한 조각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