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인천에 거대한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항구가 필요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에 항구 만드는 토목공사는 고난의 연속이었을 텐데, 일제는 조선 노동자를 착취해 해결했다. 노동자는 송림동의 허름한 집에 수용했고 그들이 싸리재로 출퇴근하면서 눈물을 삼켰을지 모른다. 일본인의 감시하에 모진 노동을 감내했던 아버지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아이는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일제강점기에 윤동주는 젊은 인생을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며 을 썼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를 건너 숲으로 가고, 고개를 넘어 마을로 걷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