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은 청빈을 도락으로 승화시켜 학문에 증진했고, 관리들은 청렴을 생활신조로 여기고, 청백리를 가문의 최고 영예로 삼았다. 조선조 500년 동안 불과 열여섯 명밖에 안 되는 청백리 재상을 뽑았을 뿐이다. 하물며 조선에서는 선비가 돈을 알면 마음이 검어지고, 선비가 술을 알면 풍류를 즐긴다고 했다. 이왕 술 말이 나왔으니 ‘유주학선 무주학불이라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는 것으로 이 글은 흥선대원군의 난초그림에 찍혀있다. 본문 따라 가난한 중에서도 편